# 사례 2. 연매출 3000억원에 달하는 탄탄한 골판지 제조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권혁홍 신대양제지 회장의 고민은 다름 아닌 가업승계다. 주가가 네 배가량 뛴 데다 매출이 2000억원을 넘어서며 상속 공제 등 각종 혜택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상속세액이 30억원을 넘으면 최고 세율을 적용받는 현행 세법에 따라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경우 절반(50%)을 세금으로 내야 할 처지다. 권 회장은 "단순 계산으로 150억원가량을 내야 할 상황"이라며 "굳이 회사를 키울 필요가 있었나 하는 회의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소득 3만달러 시대의 주역이 될 중견ㆍ중소기업을 위한 가업승계 상속세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이 `상속세 폭탄`에 잡혀 가업승계를 포기하거나 경영이 위축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 때문이다.
현행 세법은 매출액 2000억원 이하 기업을 대상으로 상속재산의 70%만 300억원 한도로 공제해주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견ㆍ중소기업 육성을 위해선 보다 `느슨한` 상속세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상속세를 전액 면제해주고, 대신 가업 유지 조건만 엄격히 지키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박종수 고려대 교수는 "정부의 조세 수입 중 상속세 비중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에 비해 가업상속세제는 지나치게 엄격한 측면이 있다"며 "상속세를 전액 감면하는 독일식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철 중기연구원 연구위원도 "중소기업 창업주들은 지속적인 재투자로 인해 다른 현금성 자산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반드시 상속세 혜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세무학회는 상속세 전액 감면으로 인한 세수 손실은 가업승계 뒤 납부할 법인세ㆍ소득세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내놨다.
가업승계 후 중소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평균 상속세는 92억4500만원으로 추정했다. 대신 상속세를 면제할 경우 이들이 3년간 납부하는 법인세 소득세 부가세 등은 평균 91억8800만원으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1442개 중견기업 중 매출액이 2000억~5000억원인 기업은 294개, 5000억원~1조원인 기업은 모두 127개다. 중견ㆍ중소기업들 요청대로 공제 대상을 1조원까지 넓힐 경우 최소 400여 개 기업이 혜택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현행 상속세제 내부에 자리 잡은 각종 독소조항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점으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상속 공제는 피상속자 한 명이 가업을 물려받았을 때만 적용된다. 이 때문에 오히려 상속세가 `형제의 난`을 부추겨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다.
파주에 위치한 매출 300억원대 A금형 업체는 지난해 창업주가 세상을 뜨면서 가업승계를 두고 형제간 다툼이 심해졌다.
상속 공제를 받기 위해 단독 상속을 받겠다는 형과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아우가 평행선을 달렸다. 결국 형이 30억원을 대출받아 현금 보상을 하면서 다툼은 일단락됐지만, 이후 경영난이 계속되고 있다.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는 "민법상 유류분제도를 세법에도 적용해 가업승계 때도 일정 비율로 지분을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속인이 최소 2년간 가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요건도 마찬가지다.
매출 1000억원 규모 가전 업체 B사를 물려받은 2세 경영인은 "갑작스럽게 부친이 질병으로 돌아가셔서 2년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며 "결국 상속세를 은행에서 대출받아 냈다"고 토로했다.
이 밖에 30억원에 불과한 사전증여 공제 한도와 10년간 자산의 20% 이상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해 신사업 진출을 방해하는 규정 등도 독소조항으로 꼽혔다.
다만 상속세 면제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부정적 시각은 여전히 기업들이 넘어야 할 벽이다.
이창호 중소기업중앙회 가업승계센터장은 "창업주의 개인 재산이나 기업의 비사업성 재산까지 상속세를 면제해달라는 것은 아니다"며 "공장ㆍ설비 등 기업용 자산에만 상속세 면제 혜택을 주면 논란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김대영 차장 / 김은표 기자 / 전정홍 기자 / 이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