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기업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특히 리스크 발생과 전개가 그렇다. 하루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예측 불허 상황이다. R(경기침체ㆍRecession)의 공포에 기업들은 잔뜩 움츠린 채 위기경영을 강화하고 나섰다.
매일경제는 2009년 3월 제16차 국민보고대회에서 `브로큰 윙(Broken Wing)`이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어려움에 처한 경제가 단기적으로 회복되더라도 새의 `꺾인 날개` 같은 모양으로 장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예견한 것이다.
세계와 국내 경기는 매일경제의 예측과 딱 맞아떨어졌다. 한국 경제는 2010년 6%대 성장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올해와 내년 성장률은 유럽발 재정위기 한파에 3%대로 추락할 전망이다.
경기침체는 모든 기업에 위협이 된다. 더욱이 사업영역을 확 늘린 기업들은 큰 성장통을 겪기 일쑤다. 대표적인 사례가 웅진그룹이다.
웅진은 지난 5~6년 사이 국내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중견그룹 가운데 하나다. 창업주 윤석금 회장(66)은 브리태니커사전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해 기네스북에 오른 `영업의 달인`이다. 그는 30여 년 전 맨손으로 기업을 세워 30대 그룹 진입을 눈앞에 둔 탁월한 기업가정신의 소유자다.
웅진은 1990년대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학습지와 정수기 렌탈 등 소비재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고심한 웅진은 생소한 분야인 건설, 에너지, 금융 등에 진출했다.
현재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는 △출판ㆍ교육 △환경ㆍ생활가전 △식품 △화장품 △에너지 △소재 △건설ㆍ레저 △서비스ㆍ금융부문에 걸쳐 15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그룹 매출액은 7조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경기사이클이 고점에 다다를 때 한껏 확장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는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경고음을 낸다. 웅진의 캐시카우인 생활가전 방문판매는 고객 비즈니스 플랫폼의 성공사례다. 그러나 그룹 전체로는 무모한 사업 확장에 따른 후유증이 크다. 신규 진출하거나 인수ㆍ합병(M&A)에 나섰던 태양광, 건설, 금융은 큰 골칫거리다.
웅진그룹에서 실적 부진 업체의 CEO는 좌불안석이다. 웅진은 최근 에너지 부문과 금융 부문 CEO를 교체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웅진폴리실리콘 CEO는 업계 1위인 OCI 출신이었고, 웅진에너지 CEO도 미국 태양광 전문업체인 `선파워`에서 영입한 인물이었다. 이들은 모두 2008년 웅진이 업계 최고 대우와 임기 7년을 보장했던 전문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태양광발전의 핵심소재인 폴리실리콘 가격이 공급 과잉으로 금융위기 이전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악화된 실적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또한 웅진그룹 안에서 금융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웅진캐피탈도 잦은 사령탑 교체에 홍역을 치른다. 지난 2월 영입된 국민은행 전략담당 부행장 출신 웅진캐피탈 대표는 10개월도 채 못 돼 자리에서 물러났다. 금융사 경영 노하우가 없던 웅진이 성급히 인수한 저축은행 두 곳의 누적된 부실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자금만 밀어넣게 된 게 근본 원인이다. 여기에 2007년 론스타로부터 인수한 극동건설도 건설경기 불황 지속으로 큰 짐이 되고 있다. 웅진은 그동안 1조5000억원가량을 극동건설에 투입했다.
`가장 자신 있는 사업을 제일 먼저 하라`는 말이 있다. 위기 상황일수록 경쟁 우위를 갖는 핵심 역량에 자원과 노력을 집중해야만이 치열한 승부에서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대기업처럼 규모나 범위의 경제를 추구하는 사업다각화 전략은 위기상황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리스크 관리의 최종 책임자는 CEO다. 한 우물을 파듯이 경쟁력 있는 분야에서 경영혁신과 창의성을 발휘해야만 기업은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R의 도래`에 역경을 이겨내는 역량을 창조함으로써 재도약을 이루는 또 다른 R가 요구된다. 다름 아닌 복원력(Resilience) 확보가 중요해진 시점이다.
[홍기영 중소기업부장 kyh@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