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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뉴스] [매경 데스크] 중견기업은 산업의 허리다
관리자 2011.07.19 1767



"개체발생(個體發生)은 계통발생(系統發生)을 반복한다."


독일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1834~1919)의 주장이다. 동물은 자신의 조상들이 겪었던 진화과정을 되풀이하면서 태어난다는 가설이다. 자궁 내 수정란은 세포분열을 거쳐 태아로 자란다. 인간의 태아도 출생까지 10개월간 인류의 진화과정을 되밟는다는 설명이다.


기업은 생명체를 똑 닮았다. 창업기→성장기→정체기→재도약기→쇠퇴기라는 라이프사이클을 거친다. 적자생존의 비즈니스 정글에선 창업보다 수성이 더 힘들다. 계속기업(Going concern)이란 표현이 있어도 80년 넘은 장수기업은 극소수다.


성장기를 거쳐 정체기에 직면한 기업은 위기를 맞기 일쑤다. 소위 `죽음의 계곡`을 넘어야만 재도약을 할 수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창업기업이 5년까지 생존할 확률은 46.3% 정도다. 창업 5년 뒤 둘 중 하나꼴로 망한다는 얘기다. 중소제조기업의 10년 생존율은 25.3%에 그친다.


기업 규모는 1인 기업에서 소상공인→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까지 스펙트럼을 이룬다. 동물 세계처럼 비즈니스 생태계도 상생을 위해서는 피라미드 구조가 이상적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허리가 잘록한 첨탑형 구조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그 확률은 0.13%밖에 안 된다. 1997년 이래 10년간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큰 곳은 119개사, 대기업으로 독자 성장한 곳은 3개사에 불과하다. 소수 기업집단에 경제력이 집중돼서는 일자리 창출이 힘들고 양극화 현상만 심해질 뿐이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돕는 것은 △시장실패 △정보 비대칭성 △독과점 폐해 등을 해소하고 △산업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ㆍ세제 등 각종 지원을 모두 합치면 140여 개에 이른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펼치는 중소기업 지원사업은 2645개에 달한다. 정부의 주요 정책은 창업과 벤처 육성에 쏠려 있다.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한 순간에지원이 끊긴다.


 중소기업 스스로도 과보호 안에 안주하려 한다. 대부분 중견기업 문턱에서 성장을 멈추고 만다. 많은 중소기업이 종업원 300명이 넘는 것을 기피한다. 정부조달 계약을 따기 위해 매출액 1500억원을 넘기지 않으려고 회사를 쪼갠다. 그 결과 중견기업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잇는 허리 역할을 못하게 된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한 연구개발(R&D)과 투자를 확 늘리는 데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업종별 쏠림현상이 심한 것도 문제다. 전자ㆍ자동차 등 특정 산업에만 인재와 자금이 몰린다. 섬유ㆍ기계ㆍ제약ㆍ소재ㆍ주물ㆍ금형 등 전통 굴뚝산업이나 뿌리산업에선 인력난과 자금난, 원자재난에 허덕인다.


 그나마 벤처기업은 약진을 거듭한다. `벤처 르네상스`라고 할 정도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액 1000억원을 넘은 벤처기업은 315개에 달했다. 두 곳은 매출액 1조원을 돌파했다.


 정부는 지난 3월 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중견기업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중소기업을 졸업하더라도 상호출자 제한기업에 속하지 않으면 혁신역량과 성장가능성이 큰 경우 행정적ㆍ재정적 지원이 가능토록 했다. 하지만 예비 중견기업 대다수는 산업발전법 개정안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망 중견기업에 대한 법적 공백은 여전한 현실이다. 중견기업을 위한 법률이 아닌 법률을 위한 중견기업이 돼선 곤란하다.


 이제라도 정부는 기업 성장단계별 지원정책을 일관되고 실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정책 사각지대도 없애야 한다. 혁신ㆍ창의ㆍ도전적인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도록 물심 양면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히든챔피언이나 월드클래스 기업을 많이 길러낼 수 있다. 이들은 주력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3~5위 안에 드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이다. "히든챔피언은 혁신과 동반성장을 주도하는 역할모델이 될 수 있다"는 헤르만 지몬 교수의 조언을 새겨들어야 한다.


 [홍기영 중소기업부장 kyh@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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